인수창업 사례를 아주 잘 설명하는 책을 읽다가, 우연히 한 장면에서 멈춰섰어요.
사양산업 회사를 인수한 어떤 미국 남자 1호의 이야기.
아쉽게도 동네 인쇄소를 인수해서 키우는 디테일한 이야기는 아주 스치듯 지나가더라고요. 저는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는데… ㅜㅜ
Walker Deibel은 홈페이지도 없고, 주문은 팩스로 받고, 직원은 대부분 은퇴 직전인 40년 된 지역 인쇄소를 인수했어요. 그리고 그걸 사서 성장시키고, 나중에 그걸 책으로 썼어요.
요즘은 이런 인수창업 사례들 쇼츠에서도 종종 보이죠. 후계자 구하기 어려운 오래되고 고된 사업체를 인수해 키우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고요.
근데 멀리 미국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한국에서도 매출 20~30억대 되는 사업체 대표님들을 만나보면, 자식들은 힘들어서 안 받으려 하고 (그리고 실제로 성장 동력도 크진 않고)
대표도 그 고됨을 알기에 굳이 가족에게 넘기지 않는. 그런 매물, 생각보다 진짜 많습니다.
아니, 20억대 대표까지도 갈 필요도 없죠.
사실 남자 2호는 진양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인수한 ‘식음료 도매 업체’. 완전 올드 비즈니스 그 자체입니다.
완전 전통 유통 싸움이라 단가 싸움은 치열하고, 물류는 힘들고, 마진은 얇고, 현장은 덥고, 모기투성이에 정신이 없습니다. 대형 유통사들은 이미 단가로 시장을 잠식했고, 새로운 판매 플랫폼이 나와도 쉐어 나눠먹기는 잠시일 뿐이죠.
창고 몇십 동씩 운영하는 대형 업체들과 단가로 경쟁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수한 이 업체는 ‘단가’보단 ‘편의’와 같은 서비스에 집중해 반복구매 고객을 확보했어요.
예를 들어, 코카콜라, 사이다, 환타를 다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각각 30개씩 살 수도 있지만, 10캔씩 섞은 세트를 팔면 조금 비싸도 편리해서 또 사게 되거든요.
또 배송 속도나 포장 방식, 사은품 같은 작지만 아주 예민한 디테일이 선택 이유가 될 수도 있죠.
이 회사는 그런 작고 민첩한 승리들을 통해 매출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승리’들일 뿐입니다. 소소한 전투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은 아니죠.
단가 전쟁에서는 절대로 제가 이길 수 없으니, 저는 지금 아예 제가 이길 수 있는 전장을 찾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마치 Walker의 사례처럼, 올드 비즈니스를 반등시킬 수 있는 방향이요.
…하지만 현실은. 지금 내일 나갈 물건들 송장 처리도 벅찹니다. ㅠㅠ
여름 피크철에 인수가 완료되다 보니, 적응할 틈도 없이 실전 투입.
아직 수요일 저녁인 게 믿기지 않네요.
지금 미발송 쌓인 송장이 Buy Then Build 책보다 더 두꺼운 지경이에요.
디지털 전환…?
Walker는 홈페이지도 없던 동네 인쇄소를 온라인에서 견적 및 발주가 가능한 인쇄소로 바꿨습니다.그때는 그냥 홈페이지 하나 있어도 디지털 전환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나봐요. (확실하진 않음)
근데 지금 한국에서요? 솔직히 자사몰 하나로는 어림없습니다. 앵간하면 스마트스토어보다 불편하고, 느리고, 적립 제도도 불리하죠. 그래서 진짜 뾰족한 니즈를 못 찾으면, 자사몰 만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즉, 디지털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뾰쪽한 니즈 도출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아..물론 니즈 후보는 있었죠. 초기 인수 목적은 ‘무인 스낵점’과의 시너지였어요. 그리고 거기서 니즈를 찾는 방향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수한 지 고작 3일 됐지만) 쏟아지는 주문을 보니, 건설현장사무소, 공장, 중소기업, 카센터, 사무실 등 생각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있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무인매장 사장님 입장에서 단가는 최우선이에요. 그래서 다들 쿠팡 씁니다. 단가 싸고, 파손되면 바로 반품되니까요. 그럼 무인 매장 사장 입장에서 단가 말고, 쉬운 반품 말고는 니즈가 없을까?
지금은 고민 중이에요.
무인 매장 사장님 입장에서 매력적인 가격, 배송, 디스펜서 세트, 큐레이팅, 냉장+온장고 렌탈같은 옵션을 만들지
아니면 오히려 기존 도매 고객들 니즈에 맞춘 세트 구성의 확장과 구체적인 ‘현장’에 맞는 공급 솔루션으로 만들지.
어쩌면 둘 다 소규모로 실험해보게 될 것 같아요. 뭘로 어떻게 테스트 할지는 아직 생각도 못해봤지만.. 정체불명의 ‘음료 도매’라는 이 회사가 ‘무인매장 전용 음료 공급 플랫폼’이 될지, ‘현장 특화 음료 세트 전문 브랜드’가 될지는… 아직 몰라요. 둘다 안 될수도 있죠..!
지금은 방향보다도 순서와 투입 시간 싸움.. 시간이 너무 없어요. 후
그래서 당장은 무리하게 전선 늘리지 않으려 해요.
조급 할 수록 느긋하게 가는 법을 연습하려고 해요.
지금은 그냥 음료 박스 지게차로 밀고 다니며 창고 정리하고, 새벽에 무인매장 가서 재고 채우고, 자기 전에 글 쓰는 노동자의 리듬. (지금은 새벽 3시.. 리듬..)
마음을 조급하게 가지지 않으려고요. 경기는 사이클이고, 조급해지면 호흡부터 무너집니다.
Walker가 말했듯, 올드 비즈니스도 다시 뛸 수 있어요.
근황으로 마무리..!
아..! 최근에 서브스택 파이낸스 분야 떠오르는 신인 작가 15위 했어요..! 다 구독자 님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는 떠오르는 작가 말고, 전체 랭킹에서도 올라갈 수 있게 다들 더 열심히(?) 공유해주세요.
아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Buy then Build 인수창업 책 리뷰 콘텐츠도 구상 중이고… 또
유료 구독자 전용 컨텐츠로 이번 음료 도매회사 인수 디테일 일지 (비용, 사건사고, 협상, 등)도 기획 중입니다! 정모도 조금씩 고민하고 있고..
차근차근 풀어갈게요…!
꾸준하게 느긋하게 지켜봐주세요.
그러니 꼭 구독 부탁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