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비전'이 유독 공허하게 들렸던 이유
10년 뒤의 꿈을 '몽상'이 아닌 '설득'으로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론
나는 평소에 동업자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눈다.
감사하게도 나의 동업자 잭(동업자 잭이 누군지 모른다면?)은 나의 이런 잦은 고민과 생각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잘 받아준다.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노이즈’까지 너무 많이 공유하는 건 아닌지 미안할 때도 많지만ㅎㅎ
다행이 우리 둘은 이 과정 자체가 팀워크를 다지는 핵심 공정이라고 믿는다. 오버 커뮤니케이션과 언더 커뮤니케이션 사이, 그 미묘한 경계선을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Art of Teamwork’이라고.
우리는 특히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한다 (물론 NBA 이야기도 꽤 자주 섞이지만).
흔히 말하는 회사의 미션이나 비전 같은 것들이다. 예를들어 “우리는 왜 사업을 하는가?” “우리는 왜 하필 ‘이’ 사업을 하는가?” “1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등등.. 점심 먹으면서도 이야기하고, 위클리 하면서도 이야기하고..
그런데 최근 대화를 복기하다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화려한 미래의 모습(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그 뒤에 따라오는 ‘소외된 주제들’에 대해서 훨씬 더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경영서나 위대한 창업자들이 기록한 창업 일지에서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우리는 대체 어떤 ‘소외된 질문들’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예를들어 이런 질문들이다.
우리가 10년 뒤의 모습(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예를들어, “좋아, 우리가 10년 뒤 모습이 되었다고 치자. 그럼 10년 뒤에 우리는 그럼 어떤 무기 (핵심 해자)를 갖추고 있어야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지?” → “그 무기를 만들려면 지금 뭘 해야하지?
혹은 이런식이다.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미션)를 이야기하다보면, 꼭 현재 기준을 물어보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예를들어, “그러면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하지? 어떤 기준으로 사업 과제를 고르고 무엇은 포기해야 할까? (핵심 가치)” → “지금 백로그에 이 일 왜 해야하지?”
처음에는 미션이나 비전을 논하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한다. 하지만 ‘Why’나 ‘How’ 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파고드는 순간, 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토론으로 번지곤 한다. 의견이 핑퐁처럼 오가다 과열되어 밤을 넘기는 일도 다반사다. 솔직히 처음으로 날을 꼬박 새워가며 논쟁했을 때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는데, 우리 정말 좋은 파트너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과거에 회사 생활을 하며 대표님들의 비전 발표를 들을 때 느꼈던 묘한 ‘이질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멋진 미래는 가르키지만, 그곳에 가기 위한 ‘디테일’과 ‘고통스러운 원칙’들은 많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동업자와 이렇게 치열하게 멋진 미래를 가르키며, 가는 방법을 논의하다보니 그때 느꼈던 공허함은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다.
물론 정답은 없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나를 따르라!”고 외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가는 광신도적인 좋은 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팀처럼 논리적으로 설득되어야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달라야 한다. 세상 모든 일들처럼, 팀바팀 케바케. 하지만 상황 인지를 곁들인.
예를들어 여기 두 리더가 있다.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리더 A: “우리 팀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거야! 진짜 멋지지? 나랑 같이 할래?”
리더 B: “우리 팀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거야. (비전) 남들이 잘 모르는 남쪽 빙벽 루트를 통해 산소통 없이 속도전으로 갈 생각이야. (전략) 호주 팀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 루트가 시간을 30% 단축해 주더라. (근거) 우리는 빙벽 전용으로 개발된 특수 등산화가 있어서 잘 미끄러지지 않아. (경쟁 우위) 단, 속도가 생명이니 동료가 뒤처지면 우리는 버리고 간다. 냉정하지만 이게 우리의 원칙이야. (핵심 가치) 그래도 나랑 같이 할래?”
나와 동업자는 B의 이야기에 더 가슴이 뛴다. 꿈이 구체적인 계획과 만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비전과 미션만 이야기하면 ‘몽상’이지만, 전략과 해자, 그리고 핵심 가치를 함께 이야기하면 ‘설득력 있는 상상’이 된다. 그리고 이 ‘설득력 있는 상상’은 여러 사람이 공감을 하면,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실체화 하기 시작한다. 마지 ‘인수창업을 주제로 하는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상상’이라던가,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수창업 펀드를 운영하는 상상’이라던가.
아, 물론, A처럼 말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A가 이미 에베레스트를 세 번이나 정복한 전설적인 등산가라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전설이 아니기에,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 쭉… 전략 회의를 하러 간다… 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