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수창업에는 사파와 정파가 있습니다.
한번도 제가 나눠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저번주에 소개한 미국의 인수창업가 Rob의 경우는 사파에 가까운 스타일이에요. 진양도 물론 사파에 가깝고요..!
그리고 오늘 소개하게 될 Marc Bartomeus의 이야기는 인수창업의 정파에 더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Marc의 정파적인 인수창업은 정석적인 방법을 통해서 서치펀드를 구성하고, 규모 있는 기업체를 인수해서, 스탠포드나 MIT ETA(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의 케이스스터디에도 실리는 그런 사례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오늘의 주인공 Marc Bartomeus 또한 저번 주 Rob 아저씨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인 2011년에 시작합니다. (2011년도에 뭔가 인수창업의 기운이..)
스페인 서치펀드 생태계를 연 공대생, Marc Bartomeus
일단 먼저 이 사람 소개를 살짝 하면
Marc는 2001년도에 공대를 졸업하고, 다양한 회사와 PE 펀드에서 경력을 쌓습니다.
그러다가 한 30대 초반에 2008년에 MIT Sloan MBA 과정에 진학하게 돼요.
졸업 후엔 당연히, 수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그렇듯 실리콘밸리나 컨설팅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빵빵한 돈과 명예를 보장 받으며~
그런데 Marc는 Nashton Partners라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면서 완전히 인수창업에 꽂히게 됩니다. Nashton Partners는 모기 퇴치 장비 같은 지루한 회사를 인수하고, 그걸 효율화해서 매각한 사례로 유명한데요. 그 내용은 지금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의 대표적인 서치펀드 케이스스터디로 쓰입니다.
결과적으로 Marc는 이 회사에서 인턴십을 계기로, 졸업 후 실리콘밸리가 아닌, 고향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근데 이런 극단적인(?) 결정을 이해하려면, 결국 당시 바르셀로나의 중소기업 구조를 이해해야하는데.
당시 2011년 바르셀로나는, 1980년대 창업했던 1세대 창업가들이 슬슬 은퇴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Marc는 그 시기를 ‘승계 시장의 시작점’으로 봤습니다. 2세들은 이미 자산이 많고, 부모의 지루한 전통 사업은 이어받고 싶어하지 않았거든요.
진양의 생각 #1
저도 예전 에피소드에 썼던 거 같은데, 서울만 살짝 벗어나 봐도 연매출 20~100억짜리 회사가 2세가 안 받겠다고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요즘 은근 많습니다.
힘들고, 더럽고, 멋지지 않아 보이고, 장래도 밝아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당시의 바르셀로나와 지금의 한국, 꽤 비슷하죠.
그러나, 3년 동안 인수할 기업을 서칭… 계속되는 실패
잠깐 설명: 서치펀드는 보통 2단계로 나뉘는데,
1단계는 회사를 찾기 위한 활동 자금과, 2단계는 실제 인수 자금으로 모집되는 구조입니다.즉, 회사를 찾는 비용까지 투자자들이 지원해주는 거죠!
결국 Marc는 바르셀로나로 귀국해, 서치펀드 펀드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스페인 투자자들이 서치펀드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니 “그거 잘 아는 미국 투자자 데려오라”고 하고, 반대로 미국 투자자들은 “스페인 시장 잘 모르니까 현지 투자자부터 찾아오라”고 하는 상황.
없는 자산 클래스를 유럽에 처음 도입하면서 생긴 심리적 장벽은 너무 높았고. 아무리 MIT MBA 졸업생이라고 해도 이게 쉽게 설득되는 그런게 아니긴 하죠.
Marc는 그때를 돌아보며 “100명한테 거절당하면 500명 더 만나러 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 명의 선배 인수창업가가 소액 투자를 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3천만원 정도??)
그걸 도화선 삼아 총 3억 원(€200,000)을 모아서 법률 자문, 리서치, 회사 탐색 등의 활동 자금으로 사용하게 돼요.
마치 보물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해적) Marc, 그리고 그걸 후원하는 왕족들의 관계처럼.
“이 3억으로 Marc, 너에게 딱 맞는 해적선을 찾아오거라!”
그러나 Marc는 그 이후로 2년 반동안 아무 회사도 인수하지 못하게 되는데..
Repli: B2B 산업용 용기 유통 회사를 인수하다
그리고 드디어, 3년의 서칭 끝에 3억이라는 돈을 다 태우고 간신히 하나의 회사를 찾습니다. 이때 Marc는 이미 30대 중반…
그는 1988년 설립된 Repli라는 회사를 찾습니다. 당시 연매출 약 255억 원 (€17M), EBITDA 약 27억 원 (€1.8M) 회사.
산업용 용기, 포장재를 유통하는 회사였고, 고객의 90%가 재구매 고객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참고로 Marc는 유통 사업은 물론, 산업용 포장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어요. 그런데도 이 회사를 인수합니다.
진양의 생각 #2
이 정도 규모면 EBITDA의 5배 안팎, 즉 120억 정도를 주고 인수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근데 경험 없는 분야의 회사를, 그것도 120억에 인수한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Marc는 그래서 “내가 실수해도 회사를 망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회사를 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합니다.
‘바보도 굴릴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게 전략의 핵심이었던 거죠.
지루한 부분은 스킵하고… 그리고 2020년, Exit
Marc는 2014년 Repli 인수 이후, 2018년에 이탈리아 제약 포장 회사를 볼트온 인수하고,
2020년엔 유럽으로 확장 중인 미국 회사에 회사를 매각합니다.
약 10년에 걸친 인수 창업 여정. 그가 30대 초반에 시작한 여정은 40대가 넘어서 끝이 났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죠? 근데 결과적으로는 초기 투자자들에게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고 본인도 같이 엑싯에 성공했어요.
지금은 Marc는 본인이 직접 서칭하진 않고, 후배 서처들에게 투자하고, 인수 자문하는 입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Marc가 운영하는 펀드를 통해서 지금까지 꽤 많은 ‘지루한’ 회사들이 인수된 걸로 알고 있어요. (30+개)
그의 작은(?) 인수로 시작한 여정이 이제는 스페인의 서치펀드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진 셈이죠.
진양의 시선 – 인수창업의 사파와 정파의 교차로..
Marc는 약 10년에 걸쳐 가장 정통적이고 정석적인 인수창업 여정을 밟은 사람입니다.
이 처럼 정파형 인수창업은 수익률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탄탄한 회사를 인수해서, 안정적인 창업을 도모하는 모델입니다. ‘잃지 않는 것’을 중심에 두는 전략이죠.
반면 진양이 주로 하는 사파형 모델은 초기엔 허름하고 볼품없지만 개선 여지가 큰 회사를 싸게 사서, 추가 자본과 노동을 갈아넣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인수한 사업체를 ‘창업 발사대’로 활용하는 것이죠.
정파의 수익률은 사파 스타일보다 낮을 수 있지만, 정파가 가진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이라는 본질적인 강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잘 굴러가던 회사를 안정적으로 인수해서,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경영자로서 커리어를 만들고 엑싯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거든요.
그럼 왜 Marc의 사례가 흥미로운가?
Marc의 여정은 지금 같은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 “크게 잃지 않고 창업을 시작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정말 흥미로워요.
그리고 Marc가 이 모델을 유럽에 처음 들여온 개척자였고, 당시 스페인의 인구와 산업 구조는 지금 한국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의 대규모 은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은퇴는 경제 성장 둔화, 노동력 감소 처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대로 인수창업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언젠가 한국에서도 정파형 인수창업이 대중화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진양은 사파의 길을 걷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이야기는 일본. “후계자 없이 사라질 뻔했던 엘리베이터 수리 업체 21개를 지역의 중소기업 제국으로 재편한” 이야기. 일본 편, 다음 주에 봐요!
목차
1부 [국가별 탐구]: 글로벌 대표 소형 인수창업가 4인의 스토리
스페인 - Search Fund의 유럽 상륙: 30년 된 가족회사를 인수한 MIT MBA의 선택 (이번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