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SaaS 인수, 거의 패스할 뻔했습니다
매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고민의 프레임을 다시 세팅.
이번 SaaS 인수, 거의 패스할 뻔했습니다
매물이 별로여서가 아니다.
매물은 괜찮았다. 가격도 받아들일 만했다. 숫자상 합리적이었다.
그런데도 거의 한 달을 망설였다. 왜?
오퍼레이터 입장에서 인수를 검토할 때 가장 깊게 고민하게 되는 질문은 늘 같다.
“과연 이게 내 시간을 이만큼 갈아 넣을 만한 업사이드가 정말 있나?”
매물의 숫자들.. 매출, 영업이익, 멀티플, 비용, MRR, churn.. 이런 숫자들에 대한 답은 언제나 빨리 나온다. 그 숫자가 좋은지 나쁜지? 다 검색하면 나온다.
가격이 합리적인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다음이다.
기회비용과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
결국 핵심 질문은, 시간 투입 리스크 대비 업사이드가 무엇인지 계산이 안되는 것. 리스크는 너무 선명하게 4k인데, 업사이드는 480p 해상도이다.
특히 딜 한개를 검토하고 있을땐 더 심해진다. 니치한 사업체를 평생 죽을때까지 키우라고? 이럴바에는 그냥 대기업에 붙어 있을껄! 싶어진다.
결국 문제는 업사이드에 대한 상상이 구체적이지 못한 것. 그 업사이드에 대한 상상이 주관성이 너무 많이 개입되는 점.
이런 것들이 문제다.
그 당시에 첫 인수는 진짜 가벼웠다. 그냥 월 1000 매출 찍어보는게 목표. 끝이었다.
“경험”이라는 명분 자체가 ROI였으니까.
근데 이젠 다르다. 경험 명분이 약해진다.
“이번 인수 프로젝트에 최소 2년 갈아 넣었을 때 진짜 ROI가 나오나?”를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시장에서 단일 인수만 놓고 보면… 솔직히 그 답이 명쾌하게 “예”인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 후보도 그랬다.
근데 결국 문제를 푼 한 줄
매듭이 풀린 건 의외의 각도였다. 동업자들과 얘기하다가 한 줄이 나왔다.
“이 사업체 하나를 잘 굴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걸 발판 삼아 다음 인수를 더 쉽게 만드는 게 목표라면?”
커머스 롤업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는 어쩌다가 하나를 인수하고, 두 개를 인수하고 둘을 연결시키려고 하다 보니…세번째 인수부터는 엄청나게 쉬워졌다.
그땐 애초에 인프라를 갖춘다는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던 거 같다. 그냥 딜1이 굴러가기 위해서 막대한 capex를 세팅해야했다. 어쩌다보니 운 좋게 딜2도 딜1에서 세팅한 고정비들을 다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두 번째 커머스 롤업 프로젝트(B2B 커머스 중심으로)를 진행하면서 애초에 공통으로 사용 가능한 CAPEX를 중점으로 개편을 시작했었고, 이게 지금 운영하는 법인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
SaaS 롤업도 결국 같은 개념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단지 이번엔 해답을 알고 있는 상태로, 반대로. 단일 인수의 ROI를 따지면 답이 안 나오는데, ‘다음 n번 인수를 위한 capex’ 로 보면 산술이 완전히 바뀐다.
우리에게 예전처럼 경험과 낭만만을 추구하는 럭셔리는 없지만, 확실한 오퍼레이터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노하우는 어느 정도 잡혀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결국 SaaS롤업의 진짜 과제
Buy Then Build에서 이걸 ‘플랫폼 역할 사업’이라 부른다. (플랫폼이랑은 다른 개념이다. Bad Naming 같다)
밴딩스푼즈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자체 광고 네트워크를 갖추면서 후속 앱들의 도달 비용을 같이 끌어내리고, 매출을 늘렸다. 한국에서 알라미도 비슷하게 접근한 거 같고.
광고 네트워크를 먼저 인수한 건지, 앱들을 여러 개 인수하고 보니 광고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고민하는 건 불필요한 거 같다. 결국 그 상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SaaS 롤업의 진짜 과제는 “A를 얼마나 잘 굴리느냐”가 아니다. “A → B → C를 굴릴 수 있는 인프라를 어떻게 세팅하느냐” 다.
즉 이번, 첫 번째 사업체의 진짜 가치는 그 자체의 현금흐름이 아니라, 다음 인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발판 역할인 셈이다.
인프라가 뭐냐. 꼭 광고 네트워크인가?
플랫폼 플랫폼 하니, 추상적으로 들리니 SaaS 비용 구조부터 보자. 매출 대비 대략 이렇다.
호스팅 ~15%
인건비 50~70%
마케팅 20~50%
G&A ~15%
인건비와 마케팅이 가장 큰 덩어리. 이 둘을 n개 SaaS가 공유할 수 있게 묶는 것, 그럼 그게 인프라다. 인공지능을 써서 최적화, 비용 절감, 등. 말은 쉽지만 오퍼레이터 입장에서 이거 한줄 한줄이 다 엄청나게 큰 덩어리로 보인다.
근데 좀 쉽게 풀어서 비유해보면 결국 우리 커머스 롤업에서 지금 운영하는 창고, 지게차, 알바, 워크플로우인 셈이다. 지금 커머스 롤업 환경에서는 한 번 세팅한 공유 인프라 위에서 새로 인수하는 커머스의 SKU가 1개든 50개든 동시에 굴러간다. (물론 적으면 적을수록 편하긴 하지만..ㅎㅎ)
SaaS도 같다. AI 운영 자동화, 공통 그로스 모듈, 공통 결제, 인보이싱, 공통 딜플로우 채널. 한 번 세팅하면 n번째 인수의 시간도, 노동도, 지속가능성도 계속 올라간다.
우선순위가 정렬된다
이 프레임으로 보면 향후 1년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딜1 하방] AI 적극 써서 인풋 최소로 굴러가게 세팅. 시간이 줄어야 인프라 만들 여유가 생긴다.
[딜2 딜플로우] 다음 매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도록 파이프라인 구축. 인수창업 거래소의 2차 개편. 익명 거래, 영업권 전문, 검증된 매출을 중심으로 거래가 가능하게.
[딜1 상방] 유입 및 전환에 AI 모듈 붙여 매출 끌어올림. 국내 매출 늘리고, 해외 결제 추가. 해외 gtm 수행 코스트 줄이기, 등.
[딜2 인수] 딜1 세팅 그대로 얹어 빠르게 안정화.
… 사이클 반복.
포인트는 ‘한 회사 잘 굴리기’에 대한 고민은 아주 적고, 2번부터는 이미 ‘인프라’ 작업이라는 점. 단일 인수한 회사를 키우는 목적보다는, 지속적인 인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도 운영할 수 있는 좋은 사업체를 인수하는게 중요하다.. 시간을 벌어야한다. 시간은 금이다!
결국, 큰 테제만 기억하며 대략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아다리가 떨어질 때가 많다. (하방만 잘 잡으면, 대체적으로 옳게 될 확률이 높다. 대략적인 북극성을 향해서 가기만 한다면)
닫으며
이번 인수를 끝까지 고민한 건 매물이 안 좋아서가 아니다. 매물은 처음부터 괜찮았다.
고민의 핵심 돌파구는 이번 인수가 단일 인수가 아니라, 향후 진행될 인수를 위한 플랫폼의 시작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생겼다.
‘이 사업체의 ROI’라는 질문을 ‘이 사업체를 발판으로 한 인프라 ROI’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가 다음 인수를 더 쉽게 만드는가?”
이 질문에 “예”가 가능해지면, 업사이드의 크기는 너무 커진다. 조금 해상도가 낮은건 괜찮다. 크기만 크다면, 조금 흐려도 충분히 베팅해 볼 만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