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한 회사를 꼭 성장시켜야 한다는 착각
성장시키지 않아도 되는 회사를 사서, 더 적은 사람으로 지키는 실험
안녕하세요, 진양입니다.
제가 스타트업 씬에서 개발자 생활을 떄려치우고 ‘언쎅시’ 비즈니스의 세계로 들어온 지도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네요.
그 추운 겨울에 가락시장 근처에서 술먹고 집을 돌아가다가 사업체를 인수해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게 대충 2024년 1월쯤이었으니.. (사실상 진양의 시작)
술김에 내린 결정치고는 꽤 오래 가고 있습니다 ㅋㅋㅋ
그 뒤로 수천개의 택배 박스를 포장하고, 남대문 동대문 거래처 가리지 않고 물건을 받아오고, 심지어 음료 유통 회사는 인수하기 위해서 지게차도 배웠습니다.
허먼밀러 의자에 앉아서 밤새 기능을 찍던 스타트업 개발자는 어느 날부터 지게차에 앉아 3.5톤 용달에 음료수 팔레트를 넣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개발자 시절과는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 SaaS를 인수하고, AI로 SaaS 여러 개를 굴리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고 까불기 시작하면서.. 정말 감사하게도 다양한 분들이 또 관심을 가져주시면서.. 요즘 다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고 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개발자(-ish)입니다.
마치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 처럼.. 혹은 세 살에 배운 코딩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약간은 반갑고, 약간은 허탈합니다.
이럴 거면 개발자는 애초에 왜 그만뒀나 싶기도 하고요 ㅋㅋㅋ
물론 지금은 코드 자체보다는 매출이 나오는 제품을 먼저 보고, 그 매출을 지기 위해서 코드를 보는 싸움을 하지만요. 오늘 에피소드에서는 이 변화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합니다.
1. 원래 방어보다 공격이 더 어렵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기존 매출을 방어하는 것보다 신규 매출을 만드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기존 매출을 지키는 것도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고객이 왜 빠지는지도 보고, 지금까지 잘 동작하던 채널이 갑자기 안 통하지 않는지 보고, 비용이 이상하게 계속 비는 구멍들도 정기적으로 막아줘야합니다. 일이 엄청 많죠.
그래도 방어의 가장 큰 장점은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지금까지 먹혔던 걸 계속 꾸준히 실행하고, 매출이 줄어들 만한 리스크를 미리 찾아서 하나씩 미리 대비하면 됩니다.
근데 신규 매출을 만드는 공격은 합리적으로 접근하면 잘 안됩니다. 이성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무조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성역처럼 불리는 고객 인터뷰를 100번 했다고, 무조건 좋은 제품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 남들이 찾지 못한 길을 찾든지, 남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구멍을 내가 가진 장점으로 날카롭게 찔러서 기회를 만들어야합니다. 마치 삼국지에서 등애가 절벽을 타고 넘어가서 촉나라를 공격해서 무너뜨린 것 처럼요.
(물론 압도적인 자본과 인재가 있다면, 정면으로 우당탕탕 밀어버리는 전술도… 유효하긴 하죠. 근데 이건 논외로..)
2. 근데 공격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비쌈
암튼 그래서 공격은 계속 이런 남들이 생각 못한 구멍들을 찾아서 찔러야하는데, 이런걸 주도하는 사람들의 몸값은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영업이 됐든, 제품이 됐든, GTM이 됐든.. 신규 매출을 만드는 사람은 제품과 고객과 시장 사이에서 흩어진 여러 맥락들을 쌓고 연결 고리들을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의 무기를 다듬어야합니다.
예를들어 제가 이번에 인수한 SaaS 처럼, ARR이 2억이 안되는 제품도 하나 운영하는데 인력이 4~5명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큰 SaaS들은 거기에 비례하게 더 필요하겠죠.
제가 AI Enabled Rollup에 베팅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 도발적으로 말하면, 최근 20년 동안 SaaS를 운영하면서 가장 비쌌던 직접비가 앞으로는 토큰값, 아니 전기값으로 치환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드를 이해하고, 고객 요청을 정리하고, 문서를 찾고, 버그를 고치는데 이제 더 이상 한명의 개발자와 한명의 기획자와 한명의 세일즈 담당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진 이미 왔고. 즉, 수비수들은 세팅하면, 운영비를 줄일 수 있는건 검증했다는 뜻…
즉, 앞으로 SaaS를 하나 더 살 때마다, 그 제품의 모든 맥락을 아는 개발자가 최소 한 명씩 붙어야 했던 구조는 더 이상 필요없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 수비는 오케이, 비싼 공격수는 어떻게..?
3. 인수해서 키워야 한다는 착각. (aka 공격 없이 텐백전술로 간다)
인수창업 이야기를 하면 거의 항상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인수한 다음에 어떻게 키우고 성장시키실 건가요?” 혹은 “어떻게 키워서 다시 파실껀가요?”
저는 예전에는 여기에 멋진 답을 알고 있어야만 되는 건줄 알았는데. 그러면 이제 신상품을 만들고, 광고 채널 새로 열고, 가지고 있는 개인 네트워크 쓰고, 해외 진출도 하고….. (실제로 인수 초창기 글들 보면 추가 매출 창출에 대한 고민이 엄청 많았음ㅋㅋ)
근데 지금은 좀 생각이 많이 변했는데…
인수창업의 가장 큰 장점은 창업에서 가장 불확실한 구간을 돈과 시간으로 걷어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들어, 제로투원 창업을 하면 돈을 태우기 전에, 수요를 먼저 검증하고, 고객 인터뷰를 하고, 가장 싼 실험부터 하나씩 해봅니다. 이렇게 망해도 덜 아픈 구조를 만들 순 있어도, 망할 확률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제품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은 뒤, 진짜로 누가 반복해서 돈을 낼지는 결국 해봐야,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그 불확실성에 여러 번 베팅할 수 있게 최대한 ‘덜 아프게 망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한번 맞으면 크고 아름다운 과실을 먹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반면 인수창업은 이미 고객이 있고, 매출이 있고, 비용과 매출에 대한 기록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을 합니다. 남이 몇 년 동안 옆에서 쓴 시간과 돈을 제가 사는거나 다름없습니다.
근데 인수 하자마자 J커브를 그려야 한다면, 인수 후 성장을 시켜야만 수익이 나는 매물이라면, 돈을 주고 걷어낸 불확실성을 제 손으로 다시 불러오는 꼴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실 스스로 가장 먼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왜 이걸 새로 창업하지 않고 굳이 돈까지 주고 사고 있지..?”
그래서 인수 전에 봐야하는 건 화려한 성장 계획이 아니고, 키우지 않아도 되는 사업인지부터 봐야합니다.
최근 12개월 매출과 순이익이 꾸준했는지, 대표가 빠져도 고객이 남는지, 계절이나 유행이나 알고리즘에 얼마나 흔들리는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성장 비용을 아예 0원으로 잡아도 내가 원하는 수익률이 나오는지.
공격 없이 텐백전술로 가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인지.
4. 사실 근데 그냥 치킨집 인수랑 똑같습니다.
‘인수’라고 쓰면 일이 갑자기 거창해 보입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기업가치를 계산하고, 두꺼운 계약서를 넘기다가 악수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근데 사업체 인수는 부모님 세대가 권리금을 주고 치킨집에 들어가던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도자가 보여주는 포스 기록을 까보고, 원재료를 얼마에 샀는지 보고, 비용 영수증 1년치를 뒤집니다.
그걸로도 찜찜하면 며칠 동안 가게 앞에 숨어서 손님 수를 직접 셉니다. 방문자 수에 평균 객단가를 곱했는데 포스 매출이랑 너무 다르면 뭔가 이상한 거니까요.
SaaS나 커머스도 똑같습니다.
포스 대신 결제 데이터, 매장 앞 손님 대신 트래픽, 원재료비 대신 마케팅비, 등등. 결국 알고 싶은 건 이 매출이 진짜인지, 숨어 있는 비용은 없는지, 주인이 바뀌고 나서도 고객이 계속 남을지. 이런 것들이죠.
아 물론, 인수창업을 쉽게 생각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치킨집 하나 살 때도 1년치 영수증을 까고 며칠 동안 가게 앞에서 손님을 세는데, 온라인 사업이라고 매도자가 보내준 엑셀만 보고 송금하면 안 됩니다.
다만 실제보다 더 높게 올려다볼 필요도, 필요 이상으로 겁먹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남이 만든 매출과 시행착오를 돈을 주고 사고, 그 숫자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5. 그럼 수비는 세팅되었으니, 두 개도 될까?
반개발자 한명과 AI가 SaaS 하나를 운영할 수 있다면 두 개도 될까. 두 개가 되면 열 개도 될까?
이걸 확인하려면 당연히 두 번째 SaaS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약간 뜬금없지만… SaaS를 운영하고 계신다면 저한테 파세요.
농담이 아니라, 이건 진지합니다! 매각을 고민해본 창업자라면 가격 말고도 신경 쓰이는 게 꽤 많을 겁니다. 내가 몇 년 동안 만든 제품을 누가 가져가는지, 기존 고객을 이상하게 대하지는 않을지, 비용 줄인다고 제품을 방치하지는 않을지.
특히 작은 SaaS는 창업자 본인이 제품이고 고객센터고 개발팀인 경우가 많아서, 매각한다고 마음먹었다고 아무한테나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조금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보다, 이 제품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이해하고 계속 운영해줄 사람을 찾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 첫 번째 SaaS를 운영하면서 그 무게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작지만 꾸준한 매출이 나오고 있고, 제품을 접거나 방치하기보다는 다음 운영자에게 잘 넘기고 싶은 SaaS가 있다면 me@jianyang.co.kr 혹은 제 링크드인으로 메시지를 주세요!
당장 매각을 결정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매출과 운영 상황부터 보고, 제가 좋은 양수자가 될 수 있는지 서로 확인해보면 됩니다!
그럼 이번 주는 여기까지! 안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