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시오는 망했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아마도)
지루한 B2B 소모품에서 찾은 생존 전략
안녕하세요, 진양입니다!
2주에 한 편씩 글을 쓰려니, 조금 어색하네요. 몇 달동안 매주 쓰던 버릇이 있었다보니.. 어색어색. 관성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과거 컨텐츠에서 저희 회사가 ‘인수창업 생태계 사업부’(Ecosystem BU)와 ‘인수창업 운영 사업부’ (Operation BU)로 나뉜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난 컨텐츠에서 인수창업 생태계를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나가겠다는 선언을 했었다면
오늘은 좀 더 땀내 나는 이야기, ‘인수창업 운영 사업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려 합니다.
특히 지난 여름에 인수한 음료랑 주방잡화 커머스 회사들 안 망하고 잘 운영하고 있냐고 묻는 분들도 계셔서, 생존 신고도 할 겸 내부에서 검증 중인 가설들도 공유하려고 합니다.
내부 사업계획서의 형태로 있던 문서를 남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작성했으니, 편하게 커피 한잔 내려서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름하여 ‘이커머스 에그리게이터 2.0’ 모델입니다! (두-둥)
배경: 커머스 롤업 1세대 에그리게이터들은 왜 망했을까?
2020년 금리가 바닥일 때 ‘이커머스 에그리게이터’ 모델이 엄청 유행했었죠. 아마존의 소규모 브랜드들을 인수해서 덩치를 키우는 쓰라시오(Thrasio) 같은 회사들도 엄청 떴고, 국내에도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비슷한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겼었죠. 부스터즈, 넥스트챕터, 클릭브랜즈, 뉴베슬, 등등..
근데 코로나 끝나고 금리 오르면서, 대다수가 망했어요. 아니면 인력 감축하거나 피봇하거나.. 그리고 결정타로 2024년 이커머스 롤업 대장주 쓰라시오가 챕터11 파산보호 신청하면서, 에그리게이터 모델은 사실상 허상으로 평가 받게 되었죠.
저도 지금 여러 커머스 매물들을 롤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이 선배님들이 망한 이유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판단했을 때 1세대 에그리게이터들이 망한 가장 큰 이유는 ’단기적인 매출을, 영구적인 장기 성장으로 오판한 것’입니다.
[장기 성장 계획을 고려하지 못한 과도한 부채]: 단기 매출을 믿고 과도하게 부채를 발생시켰는데, 매출이 떨어지자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됨.
[지속성 낮은 소비재 커머스의 creative 기반 마케팅]: 소비재 시장 특유의 경쟁 심화로 매출과 광고 효율이 떨어지자, 이걸 다시 반등시키는 역량을 인하우스에서 키우는 속도보다, 망하는 속도가 더 빨랐음.
[트랜드성 제품 유통 특성상 생긴 재고 리스크]: 이커머스 특성상 재고를 쌓아야 하는데, 유행이나 트렌드가 있는 B2C 상품은 수요가 빠지면 재고 가치가 0으로 수렴해서, 인수 자산이 늘수록 악성 재고가 배수로 늘어남.
위 문제들을 기반으로 결국 1세대 커머스 롤업 회사들이 망한 단 한개의 원인을 뽑으라면… ‘장기 매출로 전환이 불가능한 자산들을 롤업해서’라고 판단했습니다.
투자 Thesis: 에그리게이터 2.0 - 지루한 게 돈이 된다
그래서 저희는 1세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모델을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B2B 산업재 커머스 롤업” 전략입니다.
쓰라시오식의 B2C 소비재 모음이 아니라, B2B 분야의 틈새 소모품 커머스 기업들을 인수하여 묶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저희 투자 Thesis는 아주 분명하고 간결합니다.
1. 과도한 외형 매출 보다는 → 공헌이익과 재구매율 같은 지속가능한 수익에 집중한다!
우리는 변동성이 큰 B2C 소비재 대신, 법적 규제나 산업 관성에 의해 수요가 강제되는 ‘산업용 소모품’ 시장에 집중합니다. (클린룸, 꽃집, 정육점, 미용실, 식품공장, 등등) 이런 자재는 경기 변동에도 영향을 덜 받으며, 지속적인 재구매가 발생합니다. 저희는 눈에 보이는 매출 덩치보다 인수한 사업체들의 공헌이익과 재구매율 같은 장기수익에 영향을 주는 숫자들을 최우선 KPI로 삼습니다.
2. 소비재 재고 리스크 보다는 → 재고 리스크가 적은 산업재에 집중한다!
유행 타는 B2C 상품은 시즌 끝나면 재고 처리가 다 비용입니다. 우리는 매우 지루하지만, 품질 문제만 없다면 꾸준하게 일정 속도로 팔리는 소모품에 집중합니다. 앵간하면 재구매하는 그런 제품들. 이런 제품들은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교체 시 생기는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고객 생애가치가 높습니다. (가령, 조금 더 저렴한 니트릴 장갑 업체로 교체했다가, 조리 과정에 음식에 장갑이 일부 녹아서 들어가는 상황을 방지)
3. 인수만 집중 보다는 → Buy OR Build 선택권을 내재화
TAM 100억 미만의 작은 산업재 소모품 시장은 대기업도 관심 없고, 경쟁도 낮습니다. 인수 경쟁자도 없고, 상방도 낮으니 비싼 금액을 주고 공격적으로 인수하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스스로 만들어볼 수 있는 분야는 직접 제품 개발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M&A와 자체 PB 개발을 병행하면, 굳이 비싸게 인수할 필요 없이 내부적으로 대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비싸게 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꼭 사야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현재 상황: 저희 에그리게이터 2.0 현 상황
현재 저희가 집중하고 있는 B2B 소모품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생/산업 소모품: 식당 주방, 식품 제조업 현장, 클린룸, 등에서 쓰는 니트릴 장갑. 여름에 인수한 주방 잡화 커머스의 베스트 셀러입니다.
화훼/원예 소모품: 꽃집, 플로리스트들이 쓰는 절화 보존제. 자체 PB 제품 제조 전에 수요 검증을 완료했고, 마케팅 거의 없이 매출 300만 원을 넘기며, 자체 제품 생산 전 최종 지표를 검증 중입니다.
정육점 소모품: 정육용 실(고기 묶는 용도) 등. 집에서 바비큐 즐기는 마니아층도 구매합니다. 이것도 마케팅 최소한으로 쓰면서 매출 700만 원 넘겨서 빠르게 자체 브랜드 상품을 제조했고, 원가율을 기존 국내 거래 상품 대비 23% 정도 절감시켰습니다.
이런 제품들의 공통점은 ‘안정적 반복 구매’인데,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리스크 회피)로 B2B 거래 특성상 한번 거래처 정하면 잘 이탈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여기에 Prosumer들의 틈새 수요로 상방을 열어두는 전략이죠! 원래도 니트릴 장갑도 셰프가 쓰던 전문 제품인데, “나도 전문가처럼 요리하고 싶다”는 Prosumer들이 찾아온 것 처럼요.
즉, B2B로 바닥을 깔고, B2C 프로슈모 수요로 상방을 여는 구조입니다.
향후 방향성: Phase별 핵심 질문 및 개선 과제
자 지금까지 산업의 상황, 우리의 투자 가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앞으로 그러면 우리 ‘인수창업 운영 사업부’에서는 어떤 핵심 가설들을 증명해야 ‘에그리게이터 2.0 모델’이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만 답변할 수 있는 진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moat가 될 테니까요!
가장 중요한 질문: “소규모 B2B 소모품 커머스 롤업이 진짜 돈이 되냐?” (Phase 1)
인수해서 매출 떨어지면 어떻게해, B2B 소모품 시장에서 경쟁자가 들어오면, 시장이 너무 작지 않아, 운영 비용이 수익을 감당할 수 있어? ..등
결국 핵심은 에그리게이터 2.0 비즈니스 모델의 유효한지 검증해야함. 결국 단위 경제성을 증명하는 단계이고, 앞으로 6개월 정도 더 검증할 예정입니다. (M+6)
그 다음 중요한 검증: “그럼 규모를 키워도, 그 효율성이 유지 돼?” (Phase 2)
단위 경제성 증명한 이후에, 어느정도 규모까지 그 효율성이 유지되는지. TAM 300억, 500억 이상 시장에서도 이 전략이 유효한지, 내재화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등.
단위 경제성을 phase 1에서 검증 한 이후에는, scale 검증을 해야하고, 장기 상방을 더 강하게 뚫어야 합니다. (M+6 ~ +24)
마지막으로 “기업가치 XXX억 이상을 인정받을 수 있나?” (Phase 3)
최종적으로 단순 커머스 회사가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는 에그리게이터’로서 가치를 증명하는 단계입니다. 대표가 없어도 굴러가는 상태를 만드는게 최종 목표입니다.
Phase 3은 너무 먼 이야기라 아직 엄청 추상적인.. ㅎㅎㅎ
여기서 각 phase 별로 핵심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러개의 과제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디테일한 내용들은 너무 재미가 없으니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ㅎㅎ (1 Phase → 3 Questions → 12 Projects → 120 Tasks.. 으으..)
암튼 저희는 이렇게 겉보기엔 좀 덜 화려하고, 투박하고, 먼지 날리는 곳에서 (안그래도 겨울이라 지게차 납산베터리 수명 다 떨어져서 교체 중…) ‘커머스 에그리게이터 2.0’ 모델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탄탄한 B2B 수요를 기반으로 운영을 최적화하며 지속가능한 성장 엔진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결국 사업의 본질은 이익이고, 성장은 지속되어야만 의미가 있으니깐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저희의 이 땀냄새 나는 이야기가 성공적인 커머스 롤업 사례로 기억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사업하겠습니다 ㅎㅎ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