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의향서를 넣었습니다. 커머스가 아니라, SaaS에.
다시 첫 인수 앞에 서다
안녕하세요 진양입니다!
저번 글 마지막에 “디지털 서비스 딜이 들어왔다”고 살짝 언급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그 딜에 결국 인수의향서를 넣었습니다. 저번주 에피소르를 쓰고, 4일이 지난 일요일에요.
“May my choices reflect my hopes, not my fears.”
3년 전, 커머스 첫 인수를 앞두고 매일 되뇌었던 문장이에요.
그때는 회사를 떠나서 처음으로 남의 사업체를 산다는 게 무서웠거든요. 어떤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야할지, 사기는 아닐지, 회수를 못하면 어쩌지, 등.
물론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들이 쌓여서, 그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서움이에요.
‘아 내가 그 고생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정답이 있는지 모르는 여정을 다시 한번 내가 열정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에 가깝죠. (열정에 유효기간이 남았는지..?)
그래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고민만 계속 하고 있던 찰나에 결국은 또 그 문장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내리는 선택들이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반영하기를”!
1. 비공개 딜이 들어왔다
저번주 주말에 비공개 딜플로우 하나가 들어왔어요.
MRR 500만~1000만 레인지의 작은 B2B SaaS. 통화 미팅 한 번, 대면 미팅 한 번 하고. 열흘 넘게 고민했습니다.
근데 고민이 길었던 건 매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고민이 길었던 가장 핵심 이유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제 다음 3년이 완전히 바뀌거든요…!
원래는 이제 남은 몇년동안 느긋하게 커머스 롤업을 확장하면서,
수입수출도 좀 하면서 국제 물류 경험 좀 쌓고..
그리고 매출 만든걸로 상업용부동산도 이것저것 투자해보면서 법인 자산도 쌓으면서 (이래서 프랍테크 쪽 밑밥을 계속 전 에피소드부터 깐거였는데 ㅠㅠ)
낮에 날씨 좋으면 테니스도 좀 치러다니고(?) 적당히 여유롭게, 적당히 바쁘게 살려고 했거든요.
애들 크는것도 좀 보면서, 가족들이랑 시간도 보내면서…
왜냐면 지금 커머스 롤업은 이제 궤도에 올라와 있잖아요. 느긋하게 한두개 정도 더 롤업하면 되고.
마침 저번 주에 신보 보증도 1억 나왔고, 현금도 한동안 괜찮고. 그 자본으로 수행할 굵직한 과제들도 다 준비해둔 상태였고. (이자 3.5% 정도 나온듯…!)
이게 그냥 하루아침에 된것도 아니고, 사무실, 물류 환경, 워크플로우, 고정 인력, 노하우.. 1년 넘게 깔아둔 인프라가 전부 커머스에 맞춰져 있는 상태에요.
이걸 세팅하기 위해서 물론 자본이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많은 시행착오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이런것들이 어떤 무형의 자산으로 (노하우) 같은 것들로 세팅이 완료된건데...
근데 SaaS 롤업을 새로 시작하면 이 인프라를 하나도 못 써요.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 단위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커머스는 이제 슉슉 추가만 하면 되는건데.. 또 처음부터 세팅해야 하니까 ㅠㅠ)
SaaS들을 롤업하기 시작하면, 또 여기서 생기는 엄청난 시행착오들이 또 예정되어있겠죠? 그리고 그 과정은 순탄하면 좋겠지만, 아마 아주 아프고, 바쁘고, 정신없어 우당탕탕 절벽을 뛰어 내려가는 느낌일꺼에요.
그래서 결국 위 모든 고민들을 한줄로 정리해보니 결국 고민은 이거였어요.
“지금 잘 되고 있는 커머스 롤업을 계속 밀어붙일 건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다시 또 해볼 것인가.”
2. 그럼 과연, 외부자본이 없어도 했을 거냐
고민이 깊어질수록 머릿속 잡음은 많아졌어요.
단순하게 이 고민만 하면 되는 상황이면 좀 더 쉽게 결정을 내렸을텐데, 다른 변수들이 많았거든요.
이거 인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협력사에서는 캐피탈콜 형태의 외부 인수자본 제안도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어요. 얼마전에 만든 B2B 프로그램으로 연결된 기업인데, 이것저것 같이 협력할 수 있는 구간들을 논의하다보니, 이런 새로운 실험을 할때 충분히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딜은 아직 쿠킹 중이지만, 확실히 외부 자본이 있으면 연쇄 인수 구조를 더 빠르게 세팅할 수 있긴 해요. 인수 제안 들어온 딜도 고민해야하고, 외부 인수 자본 제안도 어떻게 딜을 짜야 서로 매력적인 구조를 세팅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결국은 핵심 질문을 하나로 좁혔어요.
“외부자본이 한 푼도 없어도, 썡돈 내 돈으로라도 이 3년짜리 프로젝트를 할 거냐?”
매주 50시간씩 다시 개발자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어요.
새벽에 코드 치고, 고객 CS 받고, 혼자 고객들 온보딩 세팅하는 장면까지. 그래도 할 거냐. 답은 진짜 힘들게 Yes였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것 같긴했지만, 여전히 아직 설레는 마음이 더 컸거든요.
뭔가 이런 직접 코드를 치고 직접 오퍼레이션을 다 해야하는 실험은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고요. (이제 옛날처럼 책상에 너무 오래 앉으면 힘들…..)안 해보면 10년 뒤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만약, 외부자본 없이도 딜 1건은 자체자본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회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잡고 실험을 한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 그래서 콜을 했습니다.
3. 그럼 향후 3년 프로젝트의 밑그림
SaaS 인수의향서를 넣으면서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정의했어요.
목표: 36개월 내 ARR 3.5억+ SaaS 포트폴리오 구축
3개 트랙: 인수 / 인수한 제품 개선 / 인하우스 제작
구조: 제가 핵심 오퍼레이터로 SaaS 프로젝트에 매진하며 별도 법인을 세팅. 커머스 롤업은 지금 법인에서 동업자에게 위임
결국 커머스 롤업에서 만든 플레이북 (매물 선별 기준, 실사 프로세스, 인수 후 운영 안정화) 을 그대로 차용하되, 더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살리는 전략이에요.
동업자랑은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3년간 SaaS에 집중하면 커머스 기여도가 확 줄어드는데, 리스크와 업사이드를 둘 다 나눠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지금도 계속 맞춰가고 있는 단계고요.
결국 서로 100% 신뢰가 있는 구조에서는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4. ‘아, 인공지능 시대에 무슨 SaaS냐’
이 질문 저도 스스로한테 수십 번 했어요 ㅋㅋㅋㅋ
근데 제 답은 이래요.
지금은 AI FUD로 인한 과매도 구간이라고 보고 있어요. 수많은 SaaS가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도 사라질 거예요.
근데 아무리 세상의 유통망이 효율화되어도 수많은 커머스 사업체들이 여전히 살아서 장사하고 있는 것처럼, SaaS 시장도 결국 정반합을 거쳐서 구조적으로 살아남는 것들이 남는다고 생각해요. (60% 이상은 사라질꺼라고 예상하는게 정배이긴 하지만, 100%는 아니니까요.)
핵심은 구조적으로 대체가 어려운 SaaS를 선별하는 눈이에요.
이게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여기에 커머스 롤업에서 쓰던 매물 선별 프레임워크를 SaaS용으로 재해석해서 적용하게 됐어요.
5. SaaS 매물 고르는 구조적 필터 (2가지만 먼저 공유)
HBR 인수창업 가이드북(Ruback & Yudkoff)에 나오는 좋은 인수 매물의 구조적 특성들이 있는데, 이번 딜을 검토하면서 특히 중요하게 본 필터가 2가지가 있어요. (나머지 필터들은 다른 에피소드에서 별도로 풀 예정이에요!)
필터 1: 매출의 끈적함 (Stickiness)
고객이 구조적으로 떠나기 어려운가.
떠나면 업무가 멈추거나, 데이터를 잃거나, 규제를 위반하게 되는 구조 있잖아요. 워크플로우에 박혀 있는 제품들 (예를들어 예약, 주문관리, 근태, CRM, 계약관리 같은 것들)은 전환비용이 높아요. 이건 인수하고 나서 기능 추가해서 높일 수는 있지만, 제품 카테고리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요. 인수 전에 확인해야 하는 필터입니다.
필터 2: 중요하지 않음의 중요성 (Importance of Being Unimportant)
이게 HBR 책에서 가장 감탄했던 개념 중 하나에요.
내용을 요약하면, 고객 전체 비용에서 우리 제품이 작은 비중을 차지하면, 더 싼 대안을 찾을 동기 자체가 없어요. 가령, 회사가 어느정도 효용을 제공하고 있지만 가격이 작으면, 전환 동기도 애초에 적은데 동시에 가격 압력 최소화 시켜주면, 장기 매출로 연결된다는 의미죠.
SaaS 시장에 대입하면 이래요.
AI로 더 싼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효용은 분명히 존재해요. 근데 내부 팀에서 그걸 자체적으로 만들고 관리할 만큼의 동기가 없는 서비스들이 있거든요. 월 천 원짜리인데, 그거 대체하려고 내부 개발자를 투입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잖아요.
이 구간에 있는 SaaS는 AI 시대에도 구조적으로 (한동안은) 살아남아요.
이것도 인수 후에 바꿀 수 없는 특성이에요. 그래서 인수 전에 꼼꼼하게 따져야하는 필터죠!
이번 딜은 이 두 필터에 상당 부분 부합했습니다. (나머지 인수 필터들은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별도로 풀 예정이에요!)
6. 그래서, 다시 첫 번째 인수 앞에 서다
일단, 인수의향서를 넣고 1개월 독점 검토 기간이 시작됐어요. 지금부터 본격적인 실사입니다.
솔직히 이게 잘 될지는 정말 미지수에요.
뭐 예를들어… 실사하다가 레드플래그 나와서 접을 수도 있고, 인수하고 나서 예상 못한 문제가 터질 수도 있고. 커머스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으니까요…
근데 하나는 확실해요.
이번에 안 하면 10년 뒤에도 “그때 해볼걸” 하고 있을 거라는 것. 낮에 테니스 치러 다니는 미래는.. 좀 미뤄야겠네요 ㅋㅋ
실사 과정도 여기에 계속 적어 나갈게요.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